* 개인적 연구와 견해이므로 실제 현상의 배경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병맛 : '맥락이나 개연성을 고려하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B급 감성으로서의 재미' 정도의 의미로,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인 뉘앙스를 나타내는 단어.
어느 순간부터 소위 '병맛', '약 빤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으로 모자라 전체 콘텐츠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정하고 기존 미적 기준에 맞는 아름다운 것이 아닌 조잡하고 기존 미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이상한 것들이 인기를 끄는 경우가 이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습니다.
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는 게 디씨인사이드에서 널리 쓰였던 '케장콘'의 카카오톡 이모티콘 등록입니다.
카카오 이모티콘샵은 뭇 캐릭터 사업자들에게 자신들의 캐릭터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런 만큼 승인받기도 힘들뿐더러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고 잠재적 사용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그만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레드오션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 버젓이 11개의 시리즈를 출시할 정도로 인지도와 수요가 높은 케장콘은, 소위 병맛 이모티콘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케장콘의 성공을 보고 비슷한 콘셉트의 이모티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어떻게 보아도 대충 그린 낙서에 불과한 이런 것들이 인기를 끈 이유는 아마 사용자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을 겁니다. 무릇 이모티콘 사용자들은 친근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대신 표현해 줄 수 있는 이모티콘을 찾기 마련이니까요.
대충 생겼지만 그만큼 다양한 감정표현을 하며,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도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이런 이모티콘들에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기꺼이 투영하는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과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시기의 베스트셀러 제목을 보면 사회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경쟁사회를 비난하며 그 안이 아니라 그 밖에서 나와 살기를, 다른 사람들과 같게 되려 노력하지 말기를, 자기 자신을 되찾아 행복해 지기를 주장하는 책들이 하나 둘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버드 새벽 4시 반',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책 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조금 더 찾기 쉽다고 느끼는 것은 저 자신의 착각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건, 경쟁만을 강조하던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에 빠지거나 아예 경쟁에서 낙오되는 인원이 생겨버렸다는 겁니다. 이런 사회현상을 반영하듯 이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하나 둘 출판되고 베스트셀러가 되기 시작한 거죠.
대충 살아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너는 그 자체로 괜찮다는 자기 계발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통념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주로 콘텐츠라는 매체를 통해서 '병맛'이 대중들에게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코드가 된 배경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산만하고, 대충 한 것 같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어이없음의 해학 '병맛'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과 호감을 끌어내기 쉽습니다. 우리 삶의 양상이 그렇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된 양질의 콘텐츠보다 병맛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양상을 보고 콘텐츠 소비자들의 취향과 트렌드가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공들인 것보다 대충 생각해내서 끄적거린 것이 성공하는 등 '노력=성공'의 신화가 깨어져버린 아이러니가 병맛을 우리 사회로 끌고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성공한 콘텐츠 중 대표적인 병맛, 비의 '깡' MV입니다. 유튜브 공개는 17년 12월이나 그로부터 3년 후인 20년, 놀면 뭐하니에서 소개된 이후 역주행 시작 및 관련 밈들이 만들어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자뻑과 허세로 가득한 가사와 다소 우스꽝스러운 의상과 안무 등 여러 면에서 비의 깡은 잘 만들어진 노래라기보다는 B급 병맛 감성에 기댄 노래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악플에 가까운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비는 개의치 않고 '1일 3 깡'이나 UBD(비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관객수를 희화화한 밈)등을 활용하여 자학개그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깡의 성공은 그 자체의 뛰어난 음악적 요소나 '비'라는 유명 연예인의 인기에 기댄 것이라기보다는, 자아도취적 나르시시즘 가득한 노래에 사람들이 호응해준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깡이 인기를 끌 무렵에는 유튜브 댓글뿐만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에서의 깡 관련 '드립'이나 '밈'들로 인해 깡이 더 주목받고 그 자체가 하나의 밈으로 통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비 시무 20조'나 '~화/ 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같은 것들이 그 인지도를 점점 높이고, 병맛 콘텐츠로서의 성공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할 병맛 콘텐츠는, 깡보다 조금 일찍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동물의 숲 시리즈의 T.K(K.K)의 나비보벳따우입니다.
나비보벳따우는 단순히 게임 플레이 영상(동물의숲 캐릭터 중 한 명인 저 하얀 강아지(T.K,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는 K.K)가 노래를 불러주는 부분)을 올린 한 게임 유튜버로부터 유명해졌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이 노래를 듣게 된 뭇 유튜브 사용자들이 아무 의미 없지만 중독성 있는 '나비보벳따우 보보벳띠 나미웩오'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 거죠.
이는 단순히 유튜브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출시된 20년 3월의 사회 배경과도 연관 지을 수 있는데, 이때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면서 아웃도어 활동보다 인도어 활동의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이를 증명해주는 게 국내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품절 대란'이었죠.
코로나로 집 밖에도 못 나가겠다, 게임과 유튜브 등으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모동숲 콘텐츠에 열광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많은 유튜버들이 플레이 영상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과 게임 내의 캐릭터 이야기를 하기에 게임을 사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영상이라도 찾아보며 관련 콘텐츠를 소비했습니다.
동물의 숲을 하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었더라도 나비보벳따우를 밈으로 활용한 영상은 한 번쯤 보았을 정도로 인터넷 상에서 나름의 파급력을 지녔던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펭수를 앞에서 얘기했던 것들과 연관 짓는다는 것에 반발하는 펭클럽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도 펭수 콘텐츠를 즐겨 보며 / 펭수 손거울을 얻기 위해 붕어싸만코를 스무 개 사 먹고 / 펭수 다이어리를 사서 열심히 쓰며 / 펭수참치 광고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펭수참치를 사 먹던 펭클럽으로써 펭수의 특성 중에는 병맛 콘텐츠로 볼 수 있는 특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교육방송에서 내놓은 캐릭터라기엔 초점 없고 흐리멍덩하게 생긴 눈이 무섭게 생겼습니다. 어떻게 봐도 인형탈이지만 "펭수는 펭귄이 맞다"는 펭수 콘텐츠 내 세계관이나 솔직함을 넘어 '노빠꾸', 브레이크가 없는 성격이 유머 포인트입니다. 또 교육방송의 캐릭터는 교육적인 이야기를 하며 귀감이 될 만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나, 펭수의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장님의 이름을 친구 부르듯 부르며, 매니저를 하대하고, 막무가내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클리셰를 깸으로써 새롭고 참신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줄 수 있겠으나, '열 살 아가 펭귄'이라기엔 그 비주얼이 너무 거대하고 무섭습니다. 열 살이라면서 뽕짝과 옛날 감성을 알고, 국밥을 좋아하는 모습도 다소 어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펭수가 여러 세대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위의 케장콘이나 나비보벳따우와 달리 펭수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전달해 줄 수 있는 메시지가 깊고 울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펭수는 B급 콘텐츠라기엔 너무 잘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어느 캐릭터보다 B급 감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짧게 이야기했어요. 펭러뷰!
참조한 것들
나무위키 '병맛' : https://namu.wiki/w/%EB%B3%91%EB%A7%9B
카카오 이모티콘 샵, 인터넷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
임흥택(2018), 90년대생이 온다, 웨일북
'ARRAN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첫 면접 후기 (3) | 2023.05.01 |
---|---|
23.2 ~ 23.7 목표 +근황 (0) | 2023.02.02 |
4학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의 근황 (2) | 2021.10.29 |
나의 아르바이트 역사 (3) | 2021.08.18 |
캐릭터/팬시류 기업 정보 정리 (0) | 2020.09.22 |